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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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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은 힘의 원리에 의한 폭력의 연장선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해
좋은 어른을 보고 좋은 습관을 배운다


출처: pixabay
청소년에게 현재 고민에 관해 물었을 때, 성적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며 친구 관계, 외모, 진로 등이 뒤를 이은다.

많은 상담 관련 이론가들은 ‘기능하는 인간’ 또는 ‘정상적인 삶의 기준’으로 ‘일과 관계’의 중요성을 언급했으며 근면성과 성실함이 발달과업인 학령기 청소년들에게 있어 ‘일’은 학업이며, 자아 정체감 확립을 위한 친구와의 ‘관계’ 또한 중요하다.

이러한 청소년들의 과업 수행은 부모와의 관계가 시작이지만 시간적인 부분에서 대부분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이뤄지는 게 보편적이다.

긴긴 겨울방학이 끝나고 이제 개학을 앞두고 있다. 코로나와 추운 날씨 그리고 경기 불황으로 집 밖 활동보다는 집안에서의 생활이 많았던 만큼 친구랑 어울리고 싶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워킹맘은 워킹맘대로 전업주부는 전업주부대로 아이들 챙기느라 애썼던 만큼 개학이 적잖이 반가울 것이다.

겨울방학은 여름방학과는 의미가 아주 다르다. 여름방학 이후에는 익숙한 학교, 익숙한 교실, 익숙한 담임선생님, 익숙한 친구들을 만나면 되지만 겨울방학 뒤에는 새로운 교실, 새로운 친구, 새로운 담임선생님을 만나서 적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학년이 바뀌고, 학교가 바뀌면 많은 아이는 밥 친구, 그리고 학업 부담으로 긴장하게 된다. 게다가 방학 내내 밤낮이 바뀐 아이들은 생활방식을 찾는 데만도 한참의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낯선 상황에 대한 불안과 긴장이 높아서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분리불안을 호소하는 아이들이 많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신체 증상으로 발현되어 배앓이, 두통, 수면장애, 호흡곤란을 호소하는 아이들도 많다.

학교만 들어가면 모든 게 다 해결되는 게 아니라 학교 입학과 동시에 아이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격려가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누구나 가는 학교, 누구나 해야 할 숙제와 공부, 누구나 한 번쯤은 고민하게 되는 진로와 친구 관계지만 ‘너는 왜 못하니?’라고 바라보는 시선으로 인해 아이들은 더 자책하고, 힘들어하고, 우울해진다.

하지만 무엇보다 아이들과 부모 모두를 힘들게 하는 것이 있으니 ‘학교폭력’이다.
학교폭력은 분명한 피해를 보고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지금도 그 취지는 달라지지 않았지만, 학교폭력을 대하는 모습 그리고 대처하는 방식은 많이 달라졌다.

학교폭력 재조명


▲ 타인의 권리를 짓밟고, 허용되지 않는 힘을 행사했던 사람에게 대중은 관용적이지 않다. ⓒ출처 pixabay
학교폭력과 관련된 드라마가 인기를 누리면서 다시 한번 학교폭력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졌다. 누구나 알만한 유명인들이 과거에 저지른 학교폭력으로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고, 팀에서 탈퇴하고, 계약이 해지되는 기사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실수였다, 어려서 몰랐다‘고 해명도 해보고, 때로는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대처해 보지만, 결국 타인의 권리를 짓밟고, 허용되지 않는 힘을 행사했던 사람에게 대중은 더 이상 호의롭지 않다.

그리고 아무리 노력해도 잊혀지지 않는 폭력피해자의 아픔처럼 후회와 반성, 재발방지 약속에도 한번 떠난 대중의 마음은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최소한의 양심…. 도덕성

우리는 타인의 권리를 보호하고 자신의 의무를 지키며, 사회구성원으로서 가져야 하는 최소한의 양심과 도리가 있고, 이것을 도덕성이라 부른다.

콜버그에 따르면 도덕성은 3수준 6단계로 구분되는데 전 인습 수준에는 벌을 받으면 말을 듣는 1단계와 자신의 욕구만을 충족하는 2단계가 있고, 인습 수준에는 좋고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은 3단계, 그리고 법을 지키고 준수하는 4단계가 있다.

마지막 후 인습 단계는 법에는 없지만 사회적으로 합의가 된 5단계, 누구나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키는 보편적 수준의 도덕성이 있다.

학교폭력은 1단계, 또는 2단계의 도덕성으로 학교에 가기 전에 배운 규칙과 약속만으로도 충분히 지킬 수 있는 도덕성을 요구하는데 안 지킨 것이다. 왜? 힘이 세거나, 체격이 크거나, 공부를 잘하거나, 집안이 좋거나, 장애가 없거나, 성별이 다르다는 등의 많은 이유로 발생하는 힘의 차이를 우월성으로 권리로 받아들인 채 상대방을 공격했기 때문이다.

많은 아이가 학업 스트레스, 가족 안에서 경험했던 폭력 경험을 다른 장소, 다른 대상에게 되푸는 경우가 있다. 사회학습이론의 밴듀라의 실험에 따르면 폭력적인 장면을 본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폭력을 사용할 가능성이 훨씬 높은데 바로 모델링 효과 때문이다.

물론 민주적인 가정 분위기에서 폭력보다는 대화를 많이 하는 가정이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민주적이기보다는 힘으로 가족 구성원을 제압하는 전제적인 부모, 그리고 방임하는 부모, 제한은 없이 뭐든지 원하는 것을 갖게 하는 허용적이기만 한 부모도 있을 것이다.

부모와의 관계에서 경험한 것들을 아이들이 어디에서 재현할까? 바로 학교이다. 부모가 없는 곳에서 인생의 1/3을 보내는 아이들은 이미 경쟁 관계이며, 사회에 의해 많은 것들을 비교당하면서 열등감 또는 우월감이 심겨 있기 때문에 누구나 학교폭력 대상자가  될 수 있다.

이런 일도 학교폭력이 된다.


▲가해학생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억울해요"이다 ⓒ출처: pixabay
학교폭력 대책심의위원으로 수년간 활동을 하면서 수많은 아이, 사건, 부모를 만나봤지만, 성인 못지않은 범죄성과 잔인함이 있는 폭력이 있는가 하면,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어 있는 경우의 안타까운 상황도 많이 목격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가해 학생으로 지목된 아이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바로 ‘억울해요’이다.

그도 그럴 것일 줄 서서 이동하는데 앞 친구가 빨리 가지 않았다고 욕해서, 새로 산 핸드폰으로 친구들 사진을 찍어서 단톡방에 올린 뒤 놀려서, 잘난 척 하는 친구를 반 친구 몇몇이 재수 없다고 말해서, 임원을 맡은 친구가 자신들을 노예처럼 부려 먹어서, 기숙사에서 밤마다 성적인 대화를 하는 게 듣기 힘들어서도 학교폭력에 신고가 된다.

그러니 가해 학생들은 자신은 그렇게까지 괴롭히지 않았다고 그만큼 뺏지 않았고
그만큼 놀리지 않았다고 호소하지만 여기서 명심해야 하는 것이 바로 학교폭력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기준은 가해의 입장이 아니라 폭력이 발생한 맥락과 피해 학생의 주관적 경험이다.

가해자를 향한 온정주의자 피해자 유발론은 절대 폭력을 근절시킬 수 없는 것 또한 분명하기에 폭력은 가해 입장이 아닌 피해자의 입장에서 온전히 바라봐야 한다. 배려란 내가 경험하고 싶지 않은 것을 타인에게도 요구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 면에서 폭력 상황이 사회적으로 장난 또는 친구 사이에서 흔히 발생할 수 있는 에피소드인가 하는 것이다.

학교폭력 해결 과정으로는 2주 이내의 진단, 지속적/보복성이 아닌 경우, 금전적인 손해를 즉시 배상했을 때는 학교장 해결이 가능하고, 사안이 심각할 경우 교육청으로 이관되며 별도로 경찰서에 의뢰되는 경우도 상당한데 이렇게 되면 변호사 선임 비용과 시간 또한 만만치 않다.

내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부모가 적극 나서는 태도는 아이에게는 좋은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평소에는 대화도 없고, 문제가 생기면 ‘네가 잘못했겠지!’라고 비난하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말하던 부모가 기대 이상으로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모습에 적잖이 당황하는 아이들도 있다.

“공부 공부 노래하길래 그냥 힘든 거 알아달라고 얘기한 건데, 저렇게 나오니까 이젠 학교 가기도 싫어졌어요. 애들이 저를 마마걸처럼 본다니까요. 그게 더 짜증 나요.”

이렇게 말하는 아이도 있다.

학교폭력예방법


▲실천은 가정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출처: pixabay
학교폭력 예방을 위해서는 평소 아이들과 대화가 되어야 한다. 처벌하는 부모가 아닌 기다리고 격려하는 부모가 되어야 하며, 성적보다는 자녀의 존재 자체에 감동하는 부모여야 한다.

힘은 약한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정의적인 수단이 되어야 하며,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알려주어야 한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선’을 지켜야 한다고 알려주어야 하며 실천은 가정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딸의 방을 노크 없이 들어가는 부모, 사춘기 딸에게 뽀뽀를 강요하는 부모, 허락 없이 딸의 몸을 만지고 핸드폰을 뒤지고, 기분 좋으면 사랑한다고 말하고 자신이 요구한 것을 들어주지 않으면 침 뱉듯 비난을 뱉어버리는 부모는 결국 자녀의 마음에 분노, 화, 두려움, 불안의 씨앗을 심는 것이다.

학교는 공부만 하는 장소가 아니며 사회성을 배우는 장소이기도 하지만 그 사회성의 시작과 모델은 결국 부모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고열이 난다고 모두 감기가 아니듯 피해 학생, 그리고 가해 학생 모두 부모와 사회가 보여준 힘의 원리 안에서는 온전한 피해자이며 어른들이 외면하고 있던 증상을 대신 드러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또한 처벌은 부정적인 행동을 일시적으로 제거하지만,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지 못한다. 학교폭력은 처벌보다는 해결을 위해 서로의 상처를 위로하고, 자신도 보호하는 회복적, 정의적인 방법이 필요함을 알아야 한다. 전쟁 뒤에도 봄은 오고 꽃은 피듯이 폭력이 끝난 자리에 아이들은 서로 어울리고 놀지만, 부모들은 여전히 싸우고 있는 모습은 아이들을 위해서도 좋지 않을 것이다.

피해자보호, 가해자 보호

학교폭력 피해를 입은 학생은 반드시 상담이나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한다. 어떤 부모도 하늘을 막아 비를 못 내리게 할 수는 없다.

비록 아픔은 막아주지 못했지만 회복은 도와줘야하는 것이 어른과 사회의 역할이며, 그런 도움을 통해 아이들은 PTSD(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가 아닌 PTG(외상후성장)를 경험하고 자신의 삶의 온전한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여수넷통뉴스(http://www.netong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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