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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아닌 건 없다, 정상이라 봐주지 않는 시선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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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직장인 경호 씨는 무기력함 때문에 상담에 왔습니다.

남들이 보기엔 충분히 좋은 직장과 멋진 외모에도 불구하고, 이성이나 결혼에 대한 관심도 없고, 직장생활에서의 만족감도 떨어져서 퇴사를 고민하고 있으며 어릴 때부터 해오던 종교 생활에서도 특별함이 없는데도 마땅히 그만둘 이유를 찾지 못해서 일요일이면 습관처럼 옷을 입고 집을 나섭니다.

경호 씨의 문제는 무엇일까요?

우울증과 관련된 증상을 호소하고 있지만, 기질적 취약성이나 환경의 위험에서 유발된 우울과는 달랐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굉장히 순종적이고, 자기 할 일을 잘 해왔기 때문에 선생님이나 부모로부터 혼이 난 기억도 없다. 경호 씨는 자신이 왜 이런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했지만, 이렇다 할 원인을 찾지 못해서 상담 시기가 늦어졌고,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가족 구성원에 대한 탐색에서 경호 씨는 아버지에 대해 이렇게 진술했습니다. “지독한, 답답한, 화내는, 참지 못하는”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하면서 아버지라는 단어에서 상당한 망설임을 보였습니다.

지현 씨는 20대 후반의 직장인입니다. 외모도 성격도 좋아 보여서 어디를 가든 환영받고, 사람들에게 인기도 많지만, 어린 시절 경험한 교통사고 때문에 운전을 못 하는 것은 물론이고, 차를 타고 장거리를 가는 것에 상당한 두려움이 있어서 태어난 곳을 벗어나지 못한 채 살고 있지만 지현 씨는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있습니다.

게다가 십수 년이 지났음에도 평소에는 잘 지내는 것 같지만 컨디션이 안 좋을 때나 스트레스가 심해질 때면 차를 타는 것에 대한 두려움 증상이 더 심해지고, 교통사고와 관련된 꿈을 반복해서 꾸게 돼서 수면의 질도 상당히 떨어져 있습니다.

현정 씨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생판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성추행당한 뒤 비슷한 모습의 사람만 봐도 심장이 심하게 뛰고, 온몸에서 식은땀이 납니다. 그리고 사람을 만나면 상대방도 현정 씨 자신을 보면서 성과 관련된 생각을 할까 봐 긴장하게 되고 몸이 움츠러들기도 하면서 직장생활에도 문제가 생겨서 요즘 “무슨 고민 있냐? “라는 염려를 많은 사람에게서 듣고 있으며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가 없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차를 사야만 했습니다.

사고는 우연히 발생하지만, 상처는 우연히 사라지지 않는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교통사고를 당했거나 혹은 목격한 것뿐만 아니라 부모님의 싸움 장면을 본 것, 폭력을 당한 사건 등 내가 선택하지 않았고, 원하지 않았지만 경험한 사건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그런데도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처음에는 놀라고, 아프고, 당황스럽고, 한동안은 사건 당시의 기억이 자꾸 떠올라 힘들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차차 사건과 관련한 기억이 옅어지고, 심리적인 안정을 찾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사고를 경험한 사람 중 극히 일부는 그 사건에 대한 기억이 한 달 이상 지속되면서 악몽에 시달리고, 불안과 긴장감이 가시지 않거나,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처럼 작은 단서에서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거나 반대로 강한 자극에도 무감각해지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경험하게 됩니다.

▲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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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 무서운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경험한 경호 씨의 관계 트라우마
- 사고와 사건으로 인한 지현 씨의 트라우마
- 그리고 성 관련 피해자가 되어버린 현정씨의 트라우마

이들은 모두 환경이 다르고, 경험한 사고와 사건은 다르지만 트라우마라는 공통된 어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통계적으로 자연재해를 겪었을 때는 약 5%의 피해자가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를 경험하고 사건·사고에서는 7~10% 성폭행이나 총기사고와 관련된 사건 사고는 35~50% 정도의 피해자가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 경험하고 불안과 분노, 죄책감부터 우울감까지 여러 부정적인 감정을 느낀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경험하는 분들을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은 ‘가엽다’, ‘측은하다’도 있지만 ‘정서가 너무 약하고, 의지박약이라 그렇다.’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이런 부정적인 평가와 시선이 트라우마 환자들을 더 힘들게 합니다.

아이들은 넘어져서가 아니라 넘어진 것에 대한 주변 사람의 반응을 보고 울지 말지를 결정하고, 다양한 폭력에서도 폭력 자체보다 2차 가해로 인한 상처를 더 많이 경험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유겠지요.

미국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편람(DSM-5)에서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는 사건 경험 후 1개월 내 증상이 완화되는 급성 스트레스 장애, 1개월 이상 지속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반응성 애착 장애, 탈억제 사회 관여 장애, 그리고 적응장애가 있습니다.

이런 사건을 경험한 사람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방어기제라는 것을 사용하게 됩니다. 사건 자체를 부인하거나, 어쩔 수 없다는 합리화하거나, 기억하지 않으려고 억압하거나, 환경이나 타인에게 투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뭐든 과하면 부족함만 못하듯이 방어기제 역시 건강한 수준의 활용은 빈도, 강도, 연령 적합성과 철회 가능성을 살펴야 합니다.

어떻게 해도 뛰어넘을 수 없는 아버지이지만 그 아버지조차 마음껏 미워할 수 없는 경호 씨는 자신을 미워하게 되면서 세상 곳곳에서 아버지의 시선을 느끼고 있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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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치료는 비슷한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위험을 해결해보고 자신의 해결 능력에 대한 자신감을 키우는 노출요법, 눈동자의 움직임을 통해 자극을 둔화하는 안구운동 민감소실(EMDR), 호흡을 활용한 이완 요법뿐만 아니라 약물치료도 고려될 수 있습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치료에서 중요한 것은 사고 초기에 적절히 대응 하는 것이 심각한 상황으로 가는 것을 막고, 충격과 불안에서 빨리 회복하게 합니다. 사람마다 상처가 회복되는 시기는 다를 수 있습니다. 내 기준으로, 사회적 기준으로 누군가의 상처를 가볍게 보거나, 왜 아직도 힘들어하느냐고 비난하거나, 상처를 나약함의 증거로 보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트라우마의 모든 증상은 ‘이상’이 아니라 ‘정상’임을 인정해주어야 합니다. 사건을 경험한 것, 사건 이후 힘들어하는 것, 힘든 것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 모두가 정상입니다.

누구도 상처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으니 누군가의 상처를 보거든 “아프겠다. 힘들었겠다” 위로의 말을 건네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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